[유진모의 테마토크] 오넷 콜맨 타계와 재즈의 정신

칼럼 2015. 06.12(금)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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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아직 올해가 반도 안 지났는데 벤 E. 킹, B. B. 킹에 이어 오넷 콜맨까지 미국의 슈퍼 급 재즈뮤지션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났다.

12일 AP통신 등은 콜맨의 음반을 발매했던 켄 바인슈타인의 입을 빌어 11일(현지 시각) 콜맨이 뉴욕 맨해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알토 색소폰과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작곡가인 콜맨은 1930년 텍사스에서 태어나 1958년 첫 음반을 내놓고 재즈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기존의 재즈와는 전혀 다른 즉흥연주에 의한 자기만의 독특한-무형식이니 유니크할 수밖에-스타일로 프리(전위) 재즈라는 영역을 열었다.

재즈라는 음악 자체가 프리 스타일인데 그의 재즈를 특히 프리 재즈라고 했으니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재즈는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자 1963∼1964년 잠시 재즈 신을 떠났다가 1965년에 재등장해 인기를 모으면서 이른바 전위적인 재즈의 선봉에서 수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대표작은 애틀랜틱 레이블 시절이던 1959년에 발표한 ‘The Shape of Jazz to Come’ 앨범으로 돈 체리(코넷) 찰리 헤이든(더블 베이스) 빌리 히긴스(드럼)가 세션 연주자로 참여했다. 밀트 잭슨(비브라폰) 존 루이스(피아노) 퍼시 히스(베이스), 코니 케이(드럼)로 이뤄진 모던 재즈 쿼텟)이 1962년에 리메이크한 ‘론리 우먼’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콜맨이 얼마나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인지는 그가 저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 찰리 파커와 비교되곤 했다는 점이 입증한다. 그는 기존에 유행하던 모던 재즈의 반대편에 있는 전위적 재즈로 향후 버라이어티하게 발전될 재즈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9년 시작된 재즈 록 퓨전(이른바 퓨전 재즈)이 골수 재즈 뮤지션이나 팬들에게 비난을 받긴 했지만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웨더 리포트, 리턴 투 포에버 등의 훌륭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완성돼 이제 어엿한 재즈의 하위 장르로서 수많은 동호인을 재즈의 세계로 이끄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는 점 역시 일찍이 콜맨이 재즈의 자유정신,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음악세계를 펼쳐보인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재즈는 가장 어렵고 생소한 장르다. 첫째 대부분 가사가 없어 손쉽게 귀에 착착 감기지 않고 화성과 리듬 등이 복잡해 뮤지션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요구한다. 원래 재즈는 장르의 이름이 아니라 연주방법을 지칭했다는 점은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역사는 18세기 초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최근 화제가 된 사건이나 인물을 풍자한 파퓰러 송이 유행했고 그게 때때로 희가극에도 채용되곤 했는데 19세기에 이르러 짧은 해학극이나 노래에 의한 연예공연의 일종이 됐고 그게 미국으로 건너가 노래나 촌극 등에 의한 버라이어티 쇼가 됐다. 그게 바로 보드빌(마을의 소리)이다.

그리고 그 보드빌은 19세기 중, 후반 유행한 코미디 스타일의 쇼로 발전한다. 백인이 얼굴을 검게 흑인으로 분장하고 흑인 스타일의 노래와 춤을 공연하며 흑인 노예의 삶을 희화화하는 민스트럴 쇼가 그것이다. 영화 ‘시카고’에도 나온다.

한편 17세기부터 미국으로 끌려와 남부지방, 특히 미시시피 주 삼각주 지역의 목화밭에서 일하며 힘든 삶을 이어가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음악 전통을 유럽의 음악과 접목해 18세기쯤 블루스라는 음악을 만든다. 드넓은 목화밭에서 일하며 큰 목소리로 서로 어제의 안부를 묻는 필드 할러(filed holler)로 시작해 일이 끝난 뒤 모닥불 앞에 앉아 신세를 한탄하는 등의 의사소통인 콜 앤드 리스펀스(call and response)로 발전한 끝에 19세기 말 혼자서 기타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블루스의 완성된 형식이 갖춰진다.

이에 비교해 재즈는 프랑스의 전통음악과 프랑스 피가 섞인 흑인 즉 크레올의 아프리카 정서가 합해져 완성됐다. 재즈와 블루스는 뿌리가 비슷하다. 그래서 두 음악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블루스의 고전을 재즈적 연주법으로 재해석하거나 블루스 뮤지션들 역시 재즈를 블루지하게 표현하곤 한다.

재즈에서 리듬 하모니 각 프레이징(악상을 자연스럽게 분할해 정리하는 것)은 아프리카 민속음악의 정서와 감각이 기본이고 여기에 미국 흑인 특유의 비탄적 정서가 가미되며 악기는 유럽의 전통적 구성을 따른다.

재즈의 3대 특징은 오프 비트(4박자의 제 2박과 제 4박에 액센트를 붙이는 형식 등으로 비트의 전형을 벗어난 비트)의 리듬에서 나온 스윙, 연주자의 개성을 앞세운 프레이징, 그리고 창조적인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이다.

게다가 재즈는 ‘인 더 그루브’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박진영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하는 그루브는 여기서 출발한다.

재즈와 블루스가 이렇게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점은 재즈는 부자 흑인의, 블루스는 노예 흑인의 음악이란 점이다.

크레올들은 대부분 부유한 권력층 프랑스 아버지를 둔 덕에 어려서부터 백인들과 같은 여유 있는 환경 속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1860년대 남북전쟁에서 링컨의 북군이 승리함으로써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크레올들은 백인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 상류사회에서 중하류로 떨어진다. 그러자 어려서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았거나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크레올들이 빈민가에서 연주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재즈가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장르가 한 형제임은 탄생지에서도 알 수 있다. 재즈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 뉴올리언스에서, 블루스는 미시시피 주 북서부 지역에서 각각 탄생했다. 이웃사촌을 넘어 사촌형제다. 더구나 두 음악은 ‘근친결혼’을 통해 서로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해당 뮤지션들의 명예와 부를 쌓아줬다.

그런데 두 음악의 정신세계는 좀 다르다. 블루스는 한탄 불안 절망 열패감 등이 기본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북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토속음악인 블루그래스를 자신들의 민속음악인 포크과 뒤섞어 만든 컨트리 앤드 웨스턴과 리듬 앤 블루스를 합해 만든 록이나, 그 록과 블루스를 근간으로 탄생한 힙합음악은 확실하게 저항정신을 앞세운다. 정확하게 록은 진보적 평화주의와 환경보호를, 힙합은 기득권 세력의 전복을 지향한다.

이에 반해 재즈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 임프로비제이션은 연주자가 연주할 때마다 바뀌는 기분과 흥에 따라 천변만화한다. 그럼에도 결국 재즈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인 더 그루브’ 즉 굉장히 신명나는 흥분된 상태다.

게다가 오넷 콜맨은 전위 재즈를 펼쳤다. 그건 피카소고 앤디 워홀이다. 자유분방한 예술정신으로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되 함께 프리스타일의 재즈의 세계에 빠져 무아지경에 들어가자는 ‘니르바나’와 다름없다. 그런 콜맨이 한국 시각으로 어제 열반에 들어갔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AP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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