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퀄리브리엄’, 건푸 액션의 원조 SF ‘동물농장’

칼럼 2022. 07.09(토)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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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칼럼] ‘이퀄리브리엄’(2002)은 ‘스피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등의 훌륭한 각본을 써 낸 커트 위머가 연출한, 미처 빛을 보지 못한 SF 수작이다. 21세기 초 발발한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생존자들은 제4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인간의 변덕으로 인해 인류가 멸절할 것을 깨닫고 독재자 수령을 수반으로 한 리브리아 왕국을 세운다.

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범죄는 감정 유발죄이다. 국민들의 감정을 차단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투여하게끔 법으로 정해 놓았다. 치안은 부위원장의 통제를 받는 클레릭이라는 특수 요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감정이 금지되었기에 미술품, 서적, 음악 등의 예술과 문학 등을 접하는 것은 중범죄이다.

클레릭의 최대 적은 반체제 집단. 존 프레스턴(크리스천 베일)은 클레릭 중 에이스로 혁혁한 공을 세워 왔다. 그는 감정을 품은 아내를 형장의 이슬로 보낸 후 어린 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다. 어느 날 파트너 에롤(숀 빈)이 예이츠의 시를 읽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데 더 큰 충격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예술을 즐기는 여자 메리(에밀리 왓슨)를 검거하고 신문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에롤의 연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프로지움 투여를 거른 후 작전을 나갔다가 발견한 베토벤 레코드를 듣고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 결과 개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동료 클레릭들을 죽이게 된다.

그는 끝까지 메리를 구하고자 하지만 결국 화형당하는 것을 보고는 심경에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새 파트너인 브랜트는 그런 그를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에롤의 유물을 조사하던 존은 지하 세계를 발견하고 반군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 지도자는 오랫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온 결과 동지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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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1984’부터 일련의 디스토피아 SF 작품들이 연상됨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건푸 액션(총+쿵푸 액션. 여기서는 건 카타)이 꽤 볼 만하고 나름의 메시지와 철학이 탄탄한 만큼 관람의 값어치는 높다. 근미래에 지구촌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그림은 누구나 한두 번쯤 상상할 수 있다.

게다가 전술한 작품들처럼 그 하나된 체제가 전제군주제일 것이라는 추측 역시 가능하다. 이 작품이 주목하는 두 개의 큰 줄기 중 첫 번째. 부위원장은 “중요한 건 복종, 바로 충성심이다.”라고 외친다.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의 공통된 희망을 충족시키는 조건으로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통합을 위해 획일화를 강요한다.

사랑, 감동, 낭만, 슬픔, 분노, 환희 등의 다양한 감정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심리를 조종하기 위해서이다. ‘1984’의 주제 중 매우 중요한 게 이중 사고이다. 여기서는 순환 논법의 오류라는 대사, 즉 인지부조화 이론이다. 수령은 이미 죽었지만 위원회는 그것을 숨긴 채 부위원장을 새 지도자로 옹립하고, 지배를 지속하고 있다.

부위원장은 국민들의 감정을 빼앗았지만 정작 자신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클레릭의 일은 남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런 이중 사고와 순환 오류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프로지움 투약을 거른 존은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사람에게 문화와 예술을 빼앗는다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냥 야생 동물의 종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에 이미 종교를 만들었고, 청동기 시대에 철학을 비롯한 각종 학문과 예술, 그리고 문학을 시작했다. 몸무게를 기준으로 가장 나약한 종인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만들고 즐길 줄 알았던 덕분이다. 두 번째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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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지만 감성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감동은 없는 게 확실하다. 원숭이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지만 사람만큼 섬세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술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리브리아 왕국은 사람이 사는 자유의 세계가 아니라 ‘동물농장’처럼 전체주의에 의해 폐쇄된 사육의 공간인 것이다.

존의 아들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클레릭이 되기 위해 법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사실 그와 여동생은 어머니가 죽던 날 이후 프로지움을 끊었다. 천박하고 사악하며 이중적인 어른과 달리 어린이는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른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과 행동력이 강하다는 은유.

메리는 “예술과 사랑 없이 숨을 쉬는 건 시간 죽이기일 뿐.”이라고 자신이 예술을 즐기고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이유를 말한다. 그렇다. 사람이 예술을 낳고 즐길 수 있었던 배경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기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 예술은 곧 사랑과 사람에 대한 찬가이다.

온갖 고난 끝에 존과 반군은 결국 혁명에 성공한다. 하지만 클로즈업된 존의 눈동자 속의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또 다른 반전을 암시하는 듯하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해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쳤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지롱드파가 집권했지만 이내 자코뱅파가 주도권을 쥔다.

그럼으로써 자코뱅파의 수많은 정적들, 즉 지롱드파의 인물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건 곧 공산주의의 실패를 암시하기도 한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뜻을 따라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지만 결국 스탈린 등의 권력욕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함께 일하고, 함께 잘 살자는-와 다른 독재 국가를 완성하고 말았다.

이 작품의 국내 흥행 실패는 포스터의 ‘매트릭스는 잊어라!’라는 문구처럼 ‘매트릭스’의 인기를 등에 업으려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차라리 ‘매트릭스’와는 아예 다른 차원의 SF 액션으로 포장했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불렀을 듯하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인정하건 안 하건 ‘존 윅’의 건푸는 건카타와 유사하다.

[유진모 칼럼/ 사진=영화 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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