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의 참뜻 일깨워 주는 감동

칼럼 2022. 07.20(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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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유진모 칼럼] 로버트 레드포드는 스타 배우 겸 감독으로서 여러모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비견되고는 한다. 연출 데뷔작 ‘보통사람들’(1980)로 아카데미 감독상 등을 휩쓴 그는 노먼 맥클레인의 자전적 소설 ‘A River Runs Through It and Other Stories’를 영화화한 ‘흐르는 강물처럼’(1992)으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1910년대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의 미줄라. 맥클레인(톰 스커릿) 목사는 아내와 두 아들 노먼(크레이그 셰퍼), 폴(브래드 피트)과 함께 빅블랙풋 강 인근에서 살고 있다. 어린 두 아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데 특히 가짜 미끼인 루어를 달고 하는 플라이 낚시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노먼은 아버지의 지시에 잘 따르는 반면 폴은 사사건건 어긋나는 반항아 기질을 보인다. 노먼은 대도시의 대학에 입학해 작가 겸 교수가 되고, 폴은 고향 대학을 나와 몬태나주 지역 신문의 기자가 된다. 노먼이 6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오랜만에 폴도 집에 와 네 식구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낚시도 즐긴다.

폴은 인디언 처녀 메이벨과 사귀고, 노먼은 독립 기념일 파티에서 만난 제시와 사랑에 빠진다. 노먼은 LA에 살다가 잠깐 집에 들른 제시의 망나니 오빠 닐 때문에 제시와의 사이가 잠시 멀어지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는다. 시카고 대학에서 강사 채용을 제안하자 제시와 함께 시카고로 떠날 결심을 하고 폴에게도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러나 폴은 거절한다. 그는 도박에 빠진 탓에 빚이 많다. 시카고로 떠나기 직전 노먼은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도박장에서 시비가 붙은 폴이 타살된 것인데. 제6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데서 알 수 있듯 스크린 자체가 주인공이다. 계곡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빅블랙풋강과 그 주변의 풍광이 눈을 호강시켜 준다.
더셀럽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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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슬로 모션으로 잡은 플라이 낚시 시퀀스가 마치 한 편의 그림 혹은 시처럼 펼쳐진다. 특별한 악역도 없고, 형제가 거룻배로 폭포를 타는 장면 외에는 긴장감이 큰 시퀀스도 없이 매우 잔잔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우선 피트의 20대 풋풋한 모습과 노먼의 아역을 맡은 조셉 고든 래빗의 귀여움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작품이 주목받을 수 있는 배경은 인생을 때론 덤덤하게, 때론 근엄하게, 때론 폭풍처럼 서술해 나간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에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또 미래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자 주요 메시지이다. 그렇기에 빅블랙풋강과 플라이 낚시가 배우 못지않은 주인공인 것.

아버지는 미국 성립의 근거가 된 프로테스탄티즘 그 자체이다. 청교도적인 삶을 자식에게 가르치며 조금이라도 빈틈이 없이 올곧게 자랄 것을 강요한다. 특히 그는 글쓰기 교육에 공을 들이는데 “작문의 기술은 간결이다.”라며 주저리주저리 늘리지 말고, 가능한 한 많은 글자를 덜어낼 것을 주문한다. 모든 작문의 준거틀이다.

노먼은 ‘우리 가족에게 낚시는 종교.’라고 회상한다. 닐과 함께 낚시를 하기로 한 형제는 그가 미끼를 가져오자 ‘그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경멸의 표정을 짓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낚시 마니아는 대부분 루어를 사용하는데 플라이 낚시꾼은 특히 그렇다. 물고기를 잡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예술을 즐기기 위한 것.

플라이 낚시꾼은 대부분 잡은 물고기를 놓아 준다. 그게 ‘흐르는 강물처럼’ 낚시를 하는 묘미이고, 그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목사를 비롯해 그의 두 아들은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을 암시한다. 신이 미리 조화롭게 만든 이 세상에서 신의 뜻대로 살라는. 그래서 영화는, 주인공들의 인생은 그렇게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라이프니츠가 비록 변신론자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예술은 쉽게 오지 않고 은혜를 통해 온다.”라는 목사의 설교만 제외하면 종교적 색채는 거의 없다. 예정조화설은 종교와 상관없는 운명론이나 기계론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노먼은 “아버지 방식에는 균형이 있다. 자연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배운다.”라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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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깨달음이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이유는 스토아학파부터 시작해 루소를 비롯해 수많은 사상가들이 자연법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적지 않은 무신론자들은 자연이 곧 신이라고 부르댔다. 꼭 그런 사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류가 자연을 거스른 데 대한 자연재해를 심심치 않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자연이 법이다!

그래서인지 노먼이 폴의 사망 소식을 전하자 목사 부부는 크나큰 고통의 슬픔에 빠지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는다. 목사의 설교의 방점이자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는 “이해하기 힘들어도 도와주고, 사랑해야 한다.”이다. 인류는 한 종이지만 각자의 내면화가 다르기에 성격, 취향, 생각 등이 제각각이다.

심지어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김국환의 ‘타타타’의 가사처럼 남은 당연하고 자기조차 잘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해하려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일단 사랑하고 보아야 한다.’라는 게 작가와 감독의 웅변이다. 노먼과 폴은 이항대립과 아이러니의 좋은 대비이자 화합이다.

아버지의 청교도 교육에 충실했던 노먼은 그러나 타지에 유학한 뒤 더 먼 대도시로 나아간다. 어릴 때 사사건건 반항하며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던 폴은 그러나 정작 성장해서는 고향을 지킨다. 아무리 가까워도 이해 못 할 사람이 있듯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나의 앞날에도 ‘반드시’라는 것은 없다. 계곡물의 흐름처럼.

인트로와 아웃트로에는 빅플랙풋에서 낚시하는 70대의 노먼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된다.”라고 말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썼다. 그가 ‘어둠의 철학자’이기에 다중적 의미이겠지만 그의 만물유전론(萬物流轉論)에 근거해 우리 인생의 천변만화함을 지적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가 강물에 발을 담고 나와 또 담글 때면 먼저 담근 물은 이미 흘러가 버린 뒤이다. 그렇게 인생은 매번 새롭고, 변화무쌍하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우리는 또 내일을 맞는다. 우리들이 발을 담갔던 강물들이 결국 바다에서 만난 뒤 비로써 다시 강물이 되듯 결국 인류의 융합만이 미래를 보장한다.

[유진모 칼럼/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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