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2’에 없고 ‘차이나타운’에는 있는

칼럼 2015. 04.30(목)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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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개봉 1주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치곤 꽤 진지하다.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치기에 어벤져스 멤버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그의 자만심은 인류를 멸망시킬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진 극강의 적 울트론을 탄생시킨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각 히어로들의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며 ‘배트맨’ ‘슈
퍼맨’ ‘스파이더맨’ ‘왓치맨’ 등의 블록버스터들이 다룬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의 혼란과 나약한 내면의 세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벤져스2’는 여느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처럼 불편하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라는 이름처럼 결국 세계를 구하는 대장은 미국이고,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마저도 고대 켈트어가 아닌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은 변함없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욕망과 자신감이기에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감히 ‘어벤져스2’에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서 ‘차이나타운’은 반갑다. 한국인이기에 오롯이 한국영화를 아끼고 애정을 품어야 한다는 논리는 작위적이지만 최소한 2시간 안팎의 ‘극장구경’ 뒤 두고 두고 뇌리에 잔상이 남고 여운이 길어 생각을 거듭하거나 이를 못 참고 다른 관람자와 토론을 하고 싶어 하는 게 바로 영화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차이나타운일까?

인천은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 민족에겐 특별한 도시다. 피난 내려온 북쪽 주민의 상당수가 자리를 잡은 도시, 한국전의 향방을 가를 맥아더의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군사적 요충지. 그리고 자장면의 탄생지.

여기엔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며 중국 본토와 대만 그리고 홍콩으로 나뉘어져야 했던 화교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지금 인천은 대한민국과 세계가 교류하는 관문이며 서울이 부럽지 않은 한류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가운데 ‘차이나타운’ 속 설정처럼 뒷골목엔 여전히 주류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불법과 탈법에 노출된 채 저마다의 생존의 본능으로 생계의 타당성을 부르짖으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기도 하다. 그 어느 도시가 안 그럴까마는 감독은 전 세계 주요도시 어딜 가든 존재하는 ‘차이나타운’이란 상징성을 가져오기 위해 인천을 빌린 듯하다.

그래서 ‘차이나타운’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마가흥업의 두목 ‘엄마’ 마우희(김혜수)의 잔인무도한 냉혈의 행위도, 그런 그녀의 충실한 개가 돼 미래의 ‘엄마’를 향해 무한질주하는 일영(김고은)의 일방통행도 나름의 이유는 갖고 있다.

스케일로만 따지면 지구평화를 위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어벤져스와 오직 자신들의 밥줄을 이어나가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엄마와 일영의 수준은 달라도 한참 차이난다. 합법과 불법을 떠나 사이즈가 ‘하늘’과 ‘땅’이다. 그럼에도 ‘차이나타운’은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으며
은유와 비유 그리고 조롱과 철학이 담겨 있어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아이언맨이 자신의 실수로 어벤져스 멤버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환상에 빠지거나 토르가 자신이 과연 진정한 다음 세대의 아스가르드의 왕인지 고민하는 장면은 슈퍼히어로도 고민이 있다는 ‘누구에게나 말 못할 고민은 있다’는 진중한 메시지를 주지만 그리 가슴 속 깊은 곳에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이자를 받으러 찾아간 석현(박보검)이 ‘일단 식사부터 하라’며 스파게티를 뚝딱 내놓고, 먼저 이자를 받으러 갔던 마작 판에서 얻어맞은 얼굴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자 깜짝 놀란 일영의 분노를 가장한 당황스러움은 충분히 피부 깊숙이 파고든다.

‘차이나타운’이 불편한 점은 일영이 석현에게 일순간에 빠져들어 엄마와 대립하는 데 있다. 그렇게 20년을 엄마의 생활방식을 체질화해 살아온 그녀가 일개 채무자의 짧은 친절에 금세 변절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그동안 잊거나 타의에 의해 억눌려졌던 인간성의 본질을 깨닫는 시간이 그리 길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차이나타운’은 차이나타운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마가흥업 식구들의 치열한 생존의 방식이 기둥줄거리다. 이 시종일관 음습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와 일상은 보는 내내 마음을 먹구름 밑으로 침전시키지만 그래서 삶이 얼마나 아픈가를 새삼스레 깨닫게 만든다.

‘어벤져스2’는 어벤져스가 울트론의 로봇 부하들을 두들겨 부수는 게 액션의 절정이기에 잔인하지 않지만 ‘차이나타운’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므로 유혈이 낭자하고 초능력의 비현실이 아닌, 회칼의 현실적인 공포감이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페미니즘같은 메시지는 애초에 생략이다. 다만 힘든 세상을 살기 위해선 남자나 여자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해진다고 이상할 게 없다는 단순한 적자생존의 논리만 존재할 따름이다.

그래서 엄마는 무심한 표정으로 뇌까린다. ‘증명해봐, 네가 아직 필요하단 것을’이라고. 이는 어린 일영이 숨을 할딱이는 유기견을 애처롭게 쳐다보자 단숨에 숨을 끊어주고 그게 돕는 것이란 논리를 펼치며 ‘너도 필요 없게 되면 죽일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조직 경영철학이 시종일관 이어져 내려온 것일 따름이고 이것은 알고 보면 엄마가 자신의 엄마에게 배워왔던 신념이다. 그건 엄마가 자신을 닮은 일영에게서 윤회 혹은 승계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차이나타운’에 대한 평가는 ‘재미있다’가 압도적인 ‘어벤져스2’와 달리 지적 과시욕에 들뜬 언론과 지적 허영심에 취한 관객의 입을 통해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나왔다’는 평을 듣지만 그와 비슷한 분포의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 그건 영화라는 상업적 정체성과 그럼에도 영화는 예술적 값어치가 필요하다는 작가주의적 시각의 충돌일 뿐 사실 이 영화는 현실반영형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만큼은 그 값어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유명 개그맨들이 여자를 비하하다 못해 성의 노리개인 양 깔아뭉개고 ‘어벤져스2’의 주인공 역시 동료 여배우를 우습게 여기는 발언을 할 정도로 아직도 여성성이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첨단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살벌한 범죄의 세계에서 여자가 세습해 뒷골목을 다스린다.

그들의 생존방식은 불법-불법-불법이지만 정치와 경찰마저 우습게 알 정도로 안정되게 자신만의 세계를 잘 영위해 나간다. 자, 이쯤 되면 이 영화가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대충 답이 나온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 ‘명량’의 흥행의 원인은 다각도의 분석이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서민들의 공통적인 찬사는 ‘난세의 진정한 지도자’다. 이순신은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했던 선조로부터 질시에 의한 정치적 박해까지 감수해내며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이다. 우리 관객은 자제능력을 상실해 도시를 파괴하는 헐크나 어긋난 자만심으로 인류를 멸망시킬 울트론을 만들어 낸 아이언맨이 아니라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란 희생정신의 비장한 정신무장으로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그런 영웅을 갈망한다. 어쩌면 엄마도 일영도 차이나타운이란 특수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만의 룰을 지키려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영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꽤나 복잡하다.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근육과 주름의 섬세한 동요가 김혜수라는 틀을 통해 배출됨으로써 김고은의 일영에 대한 몰입을 완성시켜 준다. 여자 투톱을 내세운 누아르가 쉽진 않지만 이 영화는 그게 가능했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손에서 땀을 마르게 하지 않는다. 각 배우들이 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어느 누구 하나 도드라지는 법 없이 각자의 역할 속에 녹아들어 레고 블록을 완성한다. 신예 감독의 촘촘한 시나리오와 그 속에 깃든 오묘한 이데올로기가 다소 과한 소재와 영상을 참신하진 않지만 정석에 기초한 연출력으로 비교적 안정되게 그려냈다. 한국의 본격적인 여성 누아르의 포효다.

은근히 아베 정권의 손을 들어주는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어벤져스2’의 영웅 놀이인가, 현실에 눈을 뜰 것인가?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news@fashionmk.co.kr / 사진=폴룩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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